처음 재즈를 접했을 때 난 검고 어두운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난 단 한 노트도 연주할 수 없었다. 그래도 뭔가 소리를 내야 할 것 같아서, 귀에 들리는 대로 아무 음이나 긋고 불고 질렀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처음 내가 재즈를 접한 나이는 25살. 4살 때부터 악기를 해온 21년 동안, 이렇게 나 자신이 싫긴 처음이었다.
나는 클래식을 전공했고, 나름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을 졸업했다. 학비를 벌어야 해서 정말 많은 공연, 녹음 오부리를 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한 가수의 투어에 합류하게 되었고, 내 역할은 예쁘게 앉아 완벽하게 악보에 적힌 곡들을 연주하는 거였다.
그렇게 투어를 다니던 중, 어느 연주자가 피처링으로 혼자 잠시 솔로 연주하는 무대를 가졌다. 그 사람의 연주는 내 호기심을 사로잡을 만큼 특이했다. 클래식도 아닌, 그렇다고 가요도 아닌, 뭔가 내가 그동안 들어본 적 없는 연주곡이었다. 뭔가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자유스러운… 나는 “와 저걸 다 외워서 연주하다니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사람이 연주하는 곡의 제목을 알고 싶었다.
다음 날, 그 같은 연주자가 무대에 또 나왔는데, 그전 날과는 다른 곡을 연주하더라. 그다음 날은 또 다른 곡을 연주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밴드 멤버 중 한 분에게 물어봤다. “저 연주자분은 몇 곡이나 외워 온 거예요?” 그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즉흥 연주하는 거야.” 나는 너무 놀랐다. 저 많은 노트와 저 긴 곡들을 즉흥으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외운 곡이 아닌 이상 악보 없이는 한 음도 연주할 수 없는데…
그분이 나에게 코드를 볼 줄 아냐고 묻더라. 세상에 예고, 대학교에서 음악 이론만 7년을 배우고 곡 분석도 그렇게 많이 했는데, 나는 코드가 뭔지도 모르고 보는 법도 몰랐다.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진정한 음악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에 알고 가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즉흥 연주하는 법을 배우러 미국으로 떠났다.
난 즉흥 연주를 배우고 싶었는데, 미국에 와서 보니 수업에서 재즈를 배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재즈는 너무 친숙하지 않고 너무 어렵더라. 왜 또 그렇게 빠른지 내 악기로는 너무 힘들었다. 앙상블에 들어가서 벙어리처럼 앉아 있었다. 영어도 잘 안 돼서 벙어리인데, 악기는 더더욱 안 됐다.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책을 뒤져보고, 공부하고 물어보고, “왜?”, “어떻게?”라는 질문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답답했다. 재즈를 난 단 한 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한국 블로그나 웹사이트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미국 웹사이트를 찾아보며, 영어 단어를 찾아가며, 번역해가며 이해하고 배워보려고 노력했다. 정말 한 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릴 때 배워야 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나이가 들수록 질문이 너무 많아진다. 어린아이들은 그냥 ‘연습해’라고 하면 분석 없이 연습하는데, 머리가 커지니 난 자꾸 ‘이게 뭐야? 이게 어떻게 가능한데?”라는 질문만 하고 연습은 하지 않고 분석만 하고 있더라. 혼란과 우울의 최고치를 찍었다. 클래식을 했을 땐 정확한 정답들이 있고, 그 정답을 실수 없이 연주하면 됐는데, 재즈는 답안지가 없더라. 괴로웠다. 그 어려운 기교가 가득한 콘체르토를 다 연주한 내가 같은 악기로 재즈를 연주할 때는 어떤 음을 즉흥 연주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코드를 봐도 모르겠고, 그러다 루트만 냅다 연주하기 십상이었다. 너무 창피해서 연주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내 자신이 너무 작아졌다. 난 재즈를 그렇게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남았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미국 필드에서 연주해보고 더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19년이 지난 지금, 난 운이 좋게도 미국의 일류급 재즈 연주자들과 녹음하고 공연하며 미국필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있다. 난 전통 재즈뿐만 아니라 힙합 재즈, 클래식, 영화 음악, 팝, EDM 등 모든 장르를 걸쳐 연주를 할수있는 기회도 얻었다. 이게 다 가능한 이유는 즉흥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재즈 즉흥 연주를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와 팁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멀리 돌아가며 쌓아온 나의 지식과 경험을 간결하게 정리해, 즉흥 연주법을 쉽고 간단하게 공유하려고 한다. 재즈가 너무 어렵게 느껴지거나 배우고 싶어도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무엇을 연습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디서든 재즈 스탠다드 한 곡쯤은 멜로디를 연주하고, 즉흥적으로 몇 코러스를 즐겁게 연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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